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월 쿠데타 (문단 편집) == 전개 == >저는 그 때 젊었어요. '''혁명!''' 사람들이 탱크에 맞서 길거리로 나서는 걸 보면서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리투아니아 [[빌뉴스]], 라트비아 [[리가]],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었죠. 빌뉴스에서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방송국을 사수했는데, 우린 그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어요. 그걸 보면서 "저 사람들도 하는데, 우리는 뭘 하는 거야? 우린 뭐 등신들인가?" 라고 속으로 되뇌었죠. >---- >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세컨드 핸드 타임>, 당시 모스크바 시민의 증언 중 [[파일:attachment/소련 보수파 쿠데타/sovietdemo.jpg]] ~~[[대륙의 기상|불곰국의 기상]]~~ 쿠데타 이후 하루가 지났지만 고르바초프의 행방은 해외에 알려지지 않았다. 외국의 우려에 야나예프는 고르바초프가 크렘린에 되돌아왔다고 발표했으나 다시 그가 현재 크림의 별장에 계속 머무르면서 고혈압과 등의 통증을 치료하고 있다고 말을 번복했다. 한편 옐친의 봉기 촉구에 일부 군부대는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에 충성을 맹세하고 반기를 들었는데 그 수가 1만여 명에 달했다. 옐친을 지지하는 소련군과 시민들이 육탄벽을 쌓고 쿠데타군에 맞서서 저항하기 시작했고, 한편에선 공수부대가 옐친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궁지에 몰린 쿠데타군은 공수부대 사령부를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소련 시민들의 저항은 무척이나 거세졌고 시베리아에선 수천의 탄광 광부들이 전면 파업했다. 레닌그라드에서는 전면 파업과 함께 25만명의 시민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시민들은 장갑차와 탱크를 공격하고 조종사들을 끌어내리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발트 3국|발트 해 연안의 공화국들]]은 쿠데타에 반발하여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주둔하던 소련군은 각 공화국에 진주했지만 이들 발트 3국은 일제히 반란군의 명령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 즈음 서방은 소련 전역에서 쿠데타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자 러시아 공화국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쿠데타 세력에 대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논평을 유보했던 부시 대통령은 8월 18일과 달리 8월 19일 공식성명을 통해서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실각시킨 집단의 행위는 잘못 자행된 기도이고 위헌적이며 발전을 저해한다고 비난하며 고르바초프를 지지했고, NATO 회원국 등과 전화 협의를 통해 쿠데타 세력에 공동 대처 방안을 협의하는 한편 소련에 대한 미국의 경제협조계획과 현 정권 하에서는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연계하여 금융 및 곡물 차관과 기술 지원, 소련에 대한 무역상의 최혜국 대우를 중단 또는 재고하는 방안과 국제금융기관에 대한 소련 가입을 저지하는 방안 등을 내놓았다. 유럽권 역시 쿠데타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는 고르바초프의 행정을 전복한 쿠데타 세력이 개혁을 기피하거나 서방과 맺은 각종 조약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경제제재조치로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소련 지도부에서 평화적인 정치 일정의 제시 및 독일 주둔 소련군(ГСВГ)의 철수와 같은 각종 군축 조약의 이행 등을 강력히 촉구했다. 독일의 반응은 대략 "너네 돈 필요한 거 다 아는데 자꾸 까불면 혼자서 놀아야 할 거다."였다. 영국의 [[존 메이저]] 총리도 8,000만 달러의 소련 기술 지원을 동결했다. [[유럽연합#s-5.2|EC]]도 계획된 소련 원조를 끊겠다는 경고를 보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세계평화의 증진에 기여한 고르바초프의 강제 퇴진을 비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쿠데타 세력이 서방과의 군축 협정 등을 준수하겠다고 발표하였고, 중국 공산당 보수파들이 소련 보수파들을 지지할 것이란 분석에 쿠데타 세력의 성공이 점쳐지고 있었다. 8인 국가비상위원회는 8월 26일에 예정된 연방최고회의를 소집해 이미 선포한 비상사태를 인준받은 뒤 곧바로 물가 인하 단행과 같은 몇가지 경제적 당론을 제시하고 강력한 언론 통제 등을 통한 중앙집권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